올해 우리학교의 인성부장으로서 추진 중인 커다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는 '인성영화제'입니다.
단편영화가 주로 다루는 '소외', 즉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다룬 짧은 영화들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필요한 수준의 인성이 길러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수준의 인성'이란 무엇이냐고요?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맺음의 방식'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너그러운 태도를 갖는 것이죠.
여튼 그 일환으로 올해 벌써 여러 번의 행사를 가져왔는데요,
지난 월요일에는 어렵게 어렵게 <회색인간>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왜 김동식 작가였냐고요? 독립영화라는 낯선 방식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업영화와는 조금 결이 다른 '영화적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텐데, 그것을 기를 수 있는 좋은 텍스트가 바로 그의 초단편소설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설들은 발상 자체가 기발하고 신선한 데다, 초단편 소설이라는 형식답게 중간중간 생략되고 비약이 있는 곳들에 상상을 개입할 여지가 많기도 합니다. 1
그렇게 '인성 ➔ 영화 ➔ 상상력'이라는 발상의 흐름을 타고, 김동식 작가님을 모셔 보았습니다.
그에게서 들은 모든 이야기들이 좋았는데, 이런 말들을 해주었습니다.
공장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지만, 글쓰기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2
공장 일을 하며 내가 만든 물건은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지만, 내 글은 어떻게 읽히는지 알 수 있어요.
처음 글을 쓸 때 다짐했던 것. 3일에 한 편 쓰기. 3일이 지나면 아래로 밀려서 더 이상 댓글이 달리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 년 반 동안 혼자서 300편을 썼어요.
제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냐면 첫째, 운이 좋았고요.
둘째, 꾸준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댓글 달고 칭찬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쓰려고 쓴 게 아니라, 쓸 수밖에 없었던 거죠.
셋째, (제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태도가 너무 좋았어요. 글을 쓰고 첫 댓글을 제가 달면서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라고 인사했어요. 그리고 누가 지적을 하면 다 수용했어요. 인정을 하지 않고 싸우면 기분은 좋아질지 몰라도 그 이미지가 박제되어서 아무도 조언을 해주지 않으려 해요. 모르는 걸 인정하면 주변에서 도와줘요. 그리고 그렇게 도와준 분은 자신이 나를 키워줬다 생각해요. 키워준 작가니까 잘 되길 바라고 내 책을 사주고 홍보까지 해 줘요.
그러니까, 연결의 시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얻은 거죠. 사람들이 보기에 좋아 보였던 거죠. 좋은 사람들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나쁜 놈들 망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한 번 잘못했다가는 영원히 낙인 찍히는 무서운 시대이므로, 좋은 태도로 소통한다는 것은 영리한 전략이에요. "인성은 지능이다."라는 말이 정말 맞아요. 똑똑한 분들이 그렇게 인성이 좋아요. 영리하니까. 멀리 보니까. 모두 연결되어 있을 때 무언가 꾸준히 한다는 건 광고하는 거예요. 기회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꾸준히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 분들이 기회를 누구에게 줄까 찾을 때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에요.
*
인성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들이 필요하죠. 잔소리의 방식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규칙을 내세워 복종을 강요하기보다는 김동식 작가와 같이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의 삶을 학생들에게 만나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 아닐까요.
작가와 교사가 학생들을 앞에 두고 나누는 사려 깊은 대화, 행사 장소에서 보여주는 선생님과 참여자들의 배려 있는 모습들, 자유로우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로 조심하는 행동들로 인해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너그러운 관계맺음의 방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스며드는 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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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식 작가님의 회색인간을 2학년 때 읽고 큰 감명을 받았었는데, 3학년이 되어서 실제로 작가님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그동안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을 겪었고, 때로는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 따뜻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들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생각들을 제 삶에 반영하여, 주변 사람들과 좀 더 배려 깊고 따뜻한 관계를 맺어나가고자 합니다. ― 유일한 3학년 참여자 윤OO (이때가 수능 일주일 전이었지요..)
💬 이들을 글로, 활자로만 접했다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상황에 이를 대입해보니 그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했고,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기에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약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면 내게 조금은 불공평해 보이는 것들도 괜찮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부터 불평하기 전에 남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 2학년 박OO
💬 작가님의 태도도 너무나 좋았다. 내가 함부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작가님 말씀하시는 것만 들어도 긍정적이시고 성실하신 것 같았다. 남들이 해주는 지적을 기분 나쁘게 듣지않고 받아들여서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모습이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서 나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주눅 들지 않고 실수를 받아들이고 배우며,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발전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1학년 김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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